2023. 2. 12. 14:53ㆍ일상
언젠가 여행을 갔을 때..(아마 충청도? 경기도 어디 시골이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난다.) 그 호텔 사우나에 갔었는데 인상적 기억이 있다. 10명 정도만 와도 꽉찰 것 같은 아주 작은 사우나 시설이었는데 욕탕이 매우 어두컴컴해서 참 특이하다고 생각하면서 간만에 따뜻한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분위기는 어두워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나를 포함해서 3명밖에 이용하고 있지 않은터라 상당히 만족하면서 뜨끈한 목욕물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때 한 50대 정도의 중년 여성이 내가 있는 욕탕으로 들어왔다. 얼굴을 슬쩍보니 이쁜데 부자연스러운 ...눈길이 가는 이쁜 얼굴인데 뭔가 어색한 얼굴의 (추측컨데... 의료기술의 힘을 빌린듯..) 온화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마침 나머지 1명의 아주머니가 그 여성을 알아보고 "아~ 교수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제서야 호텔 옆에 낯선 이름의 전문대학 비슷한 학교가 있었던 게 기억이 났다. 아마 그 학교의 교수인가 보다 싶어 눈을 감고 자연스럽게 들리는 두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골프 이야기, 남편 이야기, 방학 이야기 등 등 주중 낮 시간에 호텔 사우나에 앉아서 하는 이야기와 걸맞게 참 평화로운 이야기들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색하지만 이쁜 중년여성의 일상이 참 좋아보였다. 주중 한가로운 낮 시간, 방학이라 여유있게 호텔 사우나에 와서 이쁘지만 어색한 얼굴을 뽀얗게 뜨거운 김을 맞으며 편안한 일상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뭐랄까.... 인생의 안정을 찾은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녀의 일생을 모르기 때문에 어떤 고난과 갈등이 내재되어있을 지는 모르지만..)
지금 와서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내가 부러웠던 것은 너무 바쁘지 않은 직업을 가지고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어 호텔 사우나를 회원권으로 끊고 편안하게 수다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부러웠던 것 같다. 당시에 나는 회사에서 답없는 사람들의 치부들을 들쳐내며 처리해야하는 그런 껄끄럽고 불편한 일로 심신이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래의 그녀와 같은 일상을 그려보면 뜨거운 김을 내뿜으면서 욕탕을 나왔던 기억이 있다.
내가 지금 이 기억이 떠오른 건 몇 주 전 집 근처 호텔에서 피트니스 회원권을 끊어 사람이 없는 주중 시간대를 찾아
수영을하고 단련된 근육을 호텔 사우나의 뜨거운 욕탕에 들어가 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의 중년 여성보다 더
젊은 나이에 이렇게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음에 만족스러워 저절로 미소가 난다. 물론 회원권 끊기 전에 이렇게 비싼 회원권을 끊어도 되는 것인지 몇 날을 고민하고 남편에게 수없이 물어보면서 소심하게 결정했지만 말이다. 앞으로 또 갈등과 번민의 사회생활이 내게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6개월 동안은 내가 원하는 일상을 충분히 누리면서 지금의 만족감과 경험으로 다 흐르게 놔둘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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